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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신의주 찍고 자갈치까지-4

발행일자 : 2011-02-22
어머니가 계시는 부산 집으로 내려온 지 며칠 후, 앞으로의 일도 구상할 겸 마음을 새롭게 다잡기 위해 광안리로 갯바람을 쐬러 갔다. 갯 내음 물씬 서려 있는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바바리 깃을 저미고 있는 삼십 초반의 사내, 무언가 심각한 고민이 있는 듯, 한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고드름처럼 한 곳에 붙박힌 채 움직일 줄을 모른다.

이젠 무엇을 해야 하나. 부모님은 아르헨티나로 가라고 한다. 형님이 터를 잡고 있는 아르헨티나. 지구의 끝 동네. 더 이상 갈래야 갈 수 없는 땅 끝으로 간다? 명목이야 형님의 사업을 돕기 위해서라지만 과연 내가 부모님이 바라시는 방향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조국과는 가장 멀리 떨어진 땅에서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외면한 채, 형님의 사업을 돕다가 적당히 결혼을 하여 토끼 같은 자식 낳아 가정의 안락한 울타리에 안주한다? 그 다음엔?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내나라 내 땅에서 멀리 떨어진 땅, 지구의 땅 끝 동네에서... 이제는 정말 내나라 내 땅에서 내가 할 일은 없는 것인가? 오늘 안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 부모님에게 그렇게 이야기 하고 나왔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더 이상 연로하신 부모님의 간절한 애원을 거절할 명분도 없는 것이 아닌가. 오랜 세월 애물단지로 겉돌기만 했던 자식. 말이 없고 착실하기만 했던 자식이 잘 다니고 있던 고등학교를 도중에서 그만 둘 줄은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주변의 만류를 거부하면서 객지에서 노동현장을 떠돌 줄은 더욱 예견하지 못했으리라. 군대에 다녀와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자,

’이젠 이 놈이 마음을 잡고 사람 구실을 하는구나’하고 한 숨을 돌리셨을 어머니, 그렁그렁한 어머니의 눈물을 어찌할 것인가. 그래, 가자! 아르헨티나로. 어디에서 뿌리를 박고 살던 내 땅을 사랑하는 마음만 버리지 않는다면, 그 곳에서도 뭔가 할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가는 것이다.

까짓 것, 못 갈 것이 무에 있겠는가.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자 엉킨 실타래 같았던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 졌다. 마음의 결정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서울에서 전화가 왔었단다. 구요비 신부님에게서 온 전화였다. 즉시 연락을 취해 보았다. 전씨 아저씨 문제가 잘 해결 되어서 좋은 소식을 알려 주려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나는 구요비 신부님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뵙지 못하고 서울을 떠난 것도 양해를 구했다. 서울에 두고 온 마음에 걸렸던 문제들 중에 그래도 한 가지 문제가 해결 되었다니 마음의 짐이 약간은 가벼운 채로 조국을 뜰 수 있어서 기쁘기 한량 없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전씨 아저씨 부디 행복하십시오.’ 한 인간에 대한 삶의 궤적이라는 것은 사소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단순사건으로 인해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서 그 단순한 사건이 결국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내가 아르헨티나 행을 결정하자 부모님은 뛸 듯이 기뻐하셨다. 이젠 한시름 놓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아르헨티나에서 형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하셨다.

어쨌든 나는 형님에게도 연락을 하고 아르헨티나의 조카들에게 줄 선물 등을 준비하면서 형님의 초청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중 어느 날, 나는 부산 서면에 위치한 동보서적에서 오랜만에 『말』지를 샀다. 그런데 거의 반 년 만에 사 보는 『말』지가 나의 운명의 궤적을 바꿔 놓을 줄이야.

『말』지가 운명을 바꾸어 놓을 줄이야

집에 와서 『말』지를 훑어 보기 시작했다. 당시에 정치적 쟁점으로 현안이 되어 있는 주요한 기사부터 읽어 내려 갔다. 그런데 처음에는 제목 부터가 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제껴 놓았던 어느 기사를 눈요기 감으로 생각하며 가볍게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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