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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노동자, '김진숙의 빚과 꿈'

발행일자 : 2011-02-22
이 겨울이 춥습니다. 마음이 무거우니 몸이 더 시립니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 님(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에게는 미안합니다. 그 분을 생각하면 마냥 춥다고 할 수 없는데요. 2주 전(1월 6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지브 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그녀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긴 싸움에 돌입하면서 조합원들에게 남긴 글 한 토막입니다.






"스물한 살에 입사한 이후 한진과 참 질긴 악연을 이어왔습니다. 스물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 하고, 부산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가고 쉰 두 살이 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가장 큰 고비가 남았네요.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지난 1년, 앉아도 바늘방석이었고 누워도 가시이불이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야 했던 불멸의 밤들. 이렇게 조합원들 짤려 나가는 거 눈뜨고 볼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 운명이 뻔한데 앉아서 당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한진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들 지킬 겁니다."

칼바람이 매섭게 부는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은 2003년 10월17일 정리해고에 맞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김주익 전 노조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 자리입니다. 김진숙(1986년 해고)은 지금 김주익 열사가 129일 동안 머물렀던 그 자리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누웠던 자리에 누워 잠을 자고,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세상을 같은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이곳 1평 남짓한 타워크레인 운전석은 생수, 전기담요, 이불이 전부라고 합니다.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크레인을 사수하는 한진중공업 조합원 동지들이 도르래로 올려주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합니다. 낮에는 집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을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어 격려를 하고, 저녁 집회 때는 전화로 연설을 합니다. 해가 지면 매일같이 조합원들에게 보낼 편지를 쓴다고 합니다.

2. 김주익 열사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 조합원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남긴 '빚'은 무게를 잴 수 없습니다. 한진중공업 악덕자본이 휘두르는 정리해고 칼날이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에게 들이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9년 말부터 2년째 노조는 파업으로 저항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

작년 초 800명, 하청노동자를 포함하면 2000명이 정리해고 됐습니다. 또 1년도 되지 않아 구조조정을 멈추기로 한 노사합의를 깨고 다시 400명을 짜르기 시작했습니다. 희망퇴직자와 정년퇴직자 110명을 빼면 290명이 길거리로 쫒겨날 운명입니다. 일터를 빼앗기면 노동자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1월 12일) 한진중공업은 기어이 이들 생산직 노동자 290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2월 14일 모두 사망 처리한다고 부고장을 발송했습니다.

74년 대물림하며 한진중공업 조선소 노동자들이 청춘을 불사른 곳, 그 대가로 경영진들은 2억원이 넘는 연봉(총 8억원)과 200억원이 넘는 주식을 배당받으면서 '경영이 어렵다'고 다시 400명의 노동자들을 짜르고 있습니다. 필리핀 수빅조선소와 에너지산업에는 수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면서도 말입니다. 이것이 노동자를 착취하며 이윤을 창출해 온 흑자기업의 존재방식이라면, 노동과 자본의 불편한 공생은 이렇게 잔혹함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나이 쉰둘에 '또 한 마리의 파리목숨이 불나방'이 되어 35미터 크레인에 오른 이유를 우리는 압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또 모르지 않습니다.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무겁고 깊고 아픈 상처를 극복하여 승리와 부활의 탯줄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그녀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차고 비장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한진중공업 동료들, 경남 양산 솥발산 열사묘역에 묻혔으나 차마 잠들지 못하고 있을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와 명퇴 압박에 시달리다가 숨을 거둔 박범수, 손규열 동료노동자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일 겁니다. 오랜 세월 김진숙은 '부채감'에 가슴 저미는 아픔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노동자들이, 노동운동가들이 '전태일들'에게 진 빚과 같은 것입니다.

3. 스물한 살 나이에 5000명의 현장 노동자 가운데 유일한 조선소 여성 용접공. 1986년 2월 한진중공업 노조대의원에 선출되면서 국가폭력기구를 등에 업은 자본권력의 회유와 협박, 구타와 감금, 그리고 부당해고로 이어진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우리 시대 진짜노동자.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복직투쟁 등 싸워온 기간만도 25년.

아픔을 겪고 견디어 온 사람만이 우리 노동자들의 설움을 아는 것일까요. 같은 처지에서 긴 세월을 싸워온 사람만이 기약 없는 투쟁의 길에 나온 노동자들의 절망과 분노와 회한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랬습니다. 김진숙은 예나 지금이나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듬직한 맏언니, 큰누나였습니다. 지치고 흔들리는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용기와 열정을 주고, 진짜노동자의 길이 뭔지를, 어떻게 하면 그 길을 갈 수 있는지를 알려줬습니다. 그녀는 연대를 실천하고 희망의 가치를 생산하는 아름다운 노동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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